본문 바로가기

뉴스/경영, 경제

[산업혁명 정리] 1차~4차 산업혁명_1차 산업혁명

1차 산업 혁명 

런던의 과학 박물관에서 찍은 "퍼핑 빌리 (Puffing Billy)"증기 엔진 사진

 

정의

산업 혁명(産業革命, : Industrial Revolution)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 등의 큰 변혁을 일컫는다. 산업 혁명은 후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게 된다.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아널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영국자본주의 초기에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산업기술이 발전하는 현상을 가리켜 표현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한번 거쳐 가는 역사적 단계에 해당된다. [1] 그 과정이 어느 나라에서는 존재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생략된다든가, 또 어느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단계 이전에 경과한다든가 그 이후에 경험한다든가 하는 성질의 과정이 아니다. 자본주의체제를 형성한 국가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역사적 단계인 것이다. 이전의 봉건시대와 중상주의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술구조와 생산구조의 발달속도가 나타난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와서는 이러한 혁명론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었었다. 『언윈』이나 『클래팜』같은 학자들이 산업혁명이라는 ‘단절성’을 부인하면서 그 과정은 ‘연속성’을 가지는 과정인 것으로 보아, 결국 전체적으로 영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쉬론(1948)』이 산업혁명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경제뿐 만 아니라 사회적 및 지적 변화까지 사용하고 있는 유용한 개념이라는 논리를 제시한 이후에는 대체로 고전적인 산업혁명 개념이 일반화 되었다. 이제 경제성장사학의 관점에 머물지 않고 사회경제구조의 변혁 즉 자본주의 국민경제로의 전환이란 관점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은 기본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공업생산 기술의 유례없는 新발명속도와 공업생산체제의 빠른 근대화 과정을 이룩한 영국의 경우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세계시장지배권이 변동되는 국면이 진행되자 산업혁명이 영국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만 나타났던 고유현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영국에 비해 멀리 뒤쳐져 있던 미국·독일·일본 같은 후발국들이 20세기에 들어와 양차대전기간을 통하여 세계시장 쟁탈전의 전면에 나서고, 결국 영국의 지배력을 누르면서 위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이들의 국가경쟁력이 영국에 필적할 만큼 성장한 계기는 바로 자국에서 산업혁명이 성취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산업혁명과정을 마쳤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산업경쟁력이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세계최강의 산업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새로 산업혁명과정을 성취한 국가가 등장하면 곧 그 정도만큼 시장지배권을 상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전적 의미로 본 산업 혁명론에서는 영국 경제의 자본주의 전개과정에 나타난 일정기간 동안의 소위 대발명의 연속과 이에 따른 공업생산 급증을 산업혁명의 오체로 파악한다. 그러나 점차 양적 내용 보다 그에 못지않게 국민경제의 변화라든가 생산체제의 변화 등 사회경제구조의 변화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발전법칙보다 경제성장추세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연구자들, 가령 콜맨(D. C. Coleman 1956)이라든가 로스토우(W. W. Rostow, 1960)같은 소위 성장론자들도 산업혁명과정에서 나타난 국민경제의 근대적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산업혁명의 의미가 한층 더 역사적·혁명적 성격을 가진 개념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양차대전을 통하여 새롭게 세계시장의 강자로 올라서면서 영국중심의 기존 지배질서를 뒤엎은 후발 자본주의국들이 자리잡은 것이다. 독일 등 후발 자본주의국들이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시장지배력을 추월하게 된 것은 이들이 각각 뒤늦게 산업혁명과정을 성취하여 자본주의체제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일단 산업혁명과정이 끝나면 이때 그 나라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을 가리켜 18세기경의 영국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한 기간의 특이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또 이런 현상이 그 후 다른 나라로 ‘확산’ 되었다고 보는 표현도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산업혁명과정은 어느 나라가 봉건제에서 벗어나 자본제사회로 전환·발전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초기단계, 즉 자본주의가 확립되는 단계에 해당된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산업혁명과정에 들어섰다 하면 그게 영국의 영향을 이어받았다든가 다른 나라의 영향을 직접 받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나라 재생산구조가 자본주의의 초기 확립과정에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이 역사적으로 18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고, 이어서 다른 국가로 전파(확산)되었다는 설명방식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국에서 자본주의체제가 확립된 후 다른 나라에서도 자본주의가 시차를 두고 발달했으며 각국의 발달초기에 각각 산업혁명단계를 거쳤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한 일이다

 

 

역사적 상황

 

산업 혁명이 자본주의발달의 초기단계에 해당되므로 자본주의 각 국에서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시기와 순서는 곧 그 나라 자본주의의 확립시기를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세계자본주의 역사를 구조에 따라 크게 나누면 세 가지 단계로 대별 할 수 있다. 첫째, 최초의 자본주의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산업자본주의시대다.

경제 질서의 바탕은 자유주의로 나타났으며 세계시장질서는 주로 영국의 주도아래 구성·전개되는 시기였다. 대체로 19세가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 단계는 독일, 미국, 일본 등을 주축으로 한 독점자본주의시대다. 경제 질서의 바탕은 독점자본구조에 따른 제국주의로 나타났으며 세계시장질서는 주로 미국의 주도체제로 재편성되어 전개된 시기였다. 대체로 20세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는 현재의 단계다. 한국, 멕시코, 중국 등 신흥 자본주의국들이 세계시장의 전면에 올라서면서 세계경제질서의 바탕도 급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경제국들이 부상하면서 ‘글로벌 다극체제(global multipolar system)’가 형성된다. 세계의 부와 경제적 영향력이 서구 국가들에서 아시아 국가들로 옮겨간다.[2] 시장질서도 1995년의 WTO 출범과 소위 新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새로운 질서에서 보듯이 크게 변하고 있어 독점자본주의시대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세계를 결국 어느 나라들이 주도하게 될는지는 아직 좀 더 지난 후에 드러나게 되겠지만 이 그룹의 선두에 한국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첫 번째 그룹 즉 산업자본주의시기의 주도국들을 제1세대국가, 두 번째 그룹을 제2세대국가, 세 번째 현재의 신흥국가군을 제3세대국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성취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완성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들어 자본제적 성격을 가진 생산자층의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1688년의 명예혁명(시민혁명)을 통하여 재생산체제가 자본주의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16세기부터 진행된 ‘인크로우저’ 운동과 모직물 산업에 힘입은 18세기 초반의 농업혁명을 바탕으로 세기후반에 공업중심의 산업혁명이 본격화 되었다. 이 과정은1733년 ‘존·케이’가 Fly Shuttle를 발명하여 방직기술을 혁신한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며 1830년대에 철강·수송기계·화학 등 중공업 생산기술이 일단 완성되는 시기에 종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약 100년에 걸친 이 기간에 당대 기술뿐 아니라 생산 체제도 공장제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 자본주의 국민경제가 체제 면에서 확립되었으며, 대외적으로 세계전체의 시장을 영국의 이익에 맞추어 영국의 시장으로 조직화 하는 데 이르렀다. 이런 독점적 조건 하에서 영국은 자유주의를 국익보호의 무기로 들고 나섰으며 19세기에 소위 “영국에 의한 평화”라는 세계시장질서를 구축해 나갔다.

 

프랑스도 비록 영국보다는 늦었지만 자본주의 제1세대권에 포함된다. 시민혁명이 영국보다 한 세기 늦어 1789년에 일어나 자본제로 전환되었으나 그 이전 ‘루이’ 왕조시기인 중상주의 말기에도 이미 영국에 대응할 부르주아적 산업요소는 축적되고 있었다. 대혁명 직후에 바로 영국과 관세전쟁 태세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이어서 ‘나폴레옹’ 전쟁을 통하여 유럽시장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축적의 뒷받침 덕분이었다. 프랑스의 산업혁명은 시민혁명인 대혁명 직후부터 시작하여 1860년까지 대체로 마무리되지만 진행과정의 이런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산업발달 및 생산체제변화 면에서 산업혁명의 혁명성은 비교적 완만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자본주의 제2세대에 속하는 국가 중 주도국가로는 독일·미국·일본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영국의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을 통하여 확립된 이후에도 20년~30년지난 후인 19세기 중반에 겨우 산업혁명기로 접어들어 대개 60년 정도에 걸쳐 이를 완성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전성기로 들어섰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가장 강한 봉건체제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므로 영국자본주의가 확립될 무렵까지도 분권 영방국인 봉건체제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1848년 3월혁명과 함께 시민 혁명이 곧 마무리되어 자본제사회로 전환된 후 산업혁명기에 접어들었다. 20세기 초 무렵에는 일단 산업혁명을 완수하여 최고의 산업경쟁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총 공업 생산규모도 영국을 능가하는 지위에 올라섰다. 영국이 이 무렵에 내부모순으로 경쟁력과 시장지배권 사이의 모순은 세계시장구조의 재편성이라는 세기적 변동을 불가피하게 했고 이것이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일찍 여러 혁명(17세기 명예혁명)을 거치고, 봉건제가 해체되어 정치적인 성숙과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이전보다 자유로운 농민층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농촌에서는 모직물 공업이 많이 발달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풍부한 지하 자원(기계와 동력에 필요한 석탄, 철), 제 2차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자본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 내외에서는 면직물의 수요가 급증하자 와트가 증기 기관을 개량해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산업 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 후 면직물 공업이 산업 혁명을 주도하게 된다. 산업 혁명 중에는 기계가 무수히 발명되었다. 이 때부터 기계는 생산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산업 혁명의 시초는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몇 개의 혁신과 연결되어 있다.

 

직물 아크라이트의 수방적기하그리브스의 다축 방적기크롬턴의 뮬 정방기(수방적기와 다축 방적기의 결합체)를 이용한 면방적기. 1769년, 특허를 얻었으며 1783년에 그 효력이 발생되었다. 면직∙방직 공장이 설립됨에 따라, 빠르게 그 효력이 줄어들었다.

 

증기력 와트가 발명한 개선된 증기기관은 즉시 광산을 퍼내는 데 이용되었지만 1780년대부터는 동력기로 대체되었다. 이 기술은 수력발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과거 상황으로부터 능률적인 반자동화 공장의 빠른 발전을 가능케 했다.

 

제철 철강 산업에서, 석탄이 을 대신하여 철 제련 단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구리용광로의 선철보다 훨씬 전에 발견되었다.

핵심적인 혁신인 이 세 가지 발견은 산업 혁명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 왔다. 다른 발명들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물의 발견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초기의 발명이 없었다면, 직물 산업의 다축 방적기나 플라잉 셔틀과 코크스를 이용한 선철의 제련과 같은 성과를 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에 발명된 역직기나 트레비식의 고압기관 역시 영국의 산업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증기 기관을 수력발전으로 가동되던 면직 공장과 제철소에 도입함으로써 편리함을 더욱 증가시켰다.

 

사회적 영향

산업 혁명은 경제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 구조도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왕족과 귀족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법 개정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부르주아들의 활약은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년 남성들이 하나로 모여 선거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게 했다. 이런 일련의 규제가 폐지되면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로 가게 되었다.

 

공업화로 농촌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로 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도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1798년 맬서스가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에게 인류가 환희에 넘치는 미래를 맞기는커녕 인구과다로 인하여 사회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한 것과 현상 자체는 맞아떨어졌던 사실이었다.[3] 낭만적 꿈을 앗아가 버린 하지만 결국 산업 혁명 때 도시에서는 석탄이 타는 연기로 공기가 나빠졌고,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심하며, 사람이 북적대는 불결한 도시로 변한 점이다.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도 산업 혁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소비와 휴식도 크게 제한 받았다. 또한 어린이 노동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고아원에서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 시켰으며 (아동 노동), 1833년 영국 의회조사에 따르면 지각을 했다고 해서 임금을 깎는 일까지 있어서 영국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야간 근무를 금지하는 등의 관련 법이 제정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정부의 탄압과 언론들의 왜곡 보도에도 불구하고, 임금 감축과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노동 운동이 일어났다. 식사는 빵과 감자가 거의 전부였으며, 거기에 차와 버터 등이 곁들어지는 정도였다.

 

산업 혁명기에 발생한 사회 문제 중에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의 수명은 귀족 계급보다 훨씬 짧았는데, 이를 비위생적인 전염병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이 일게 하였으며, 이상적 사회주의에 반발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정립에 의해서 논리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 오해

산업 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 근대화의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과장된 점이 있다. 유럽 대륙에서 조차 그 충격은 1850년까지는 몇몇 지역에 국한돼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친 것은 1875년 이후였다. 유럽 이외 지역의 산업화는 미국을 제외하면 훨씬 늦게 일어났다. 1895년 독일에서조차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농부였으며, 동유럽과 남유럽의 대부분 지역은 실질적으로 산업과 무관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1] 최단옥, “한국-독일의 산업혁명 과정 비교”, 경영사학 제24집 제3호, 2009년 9월 한국경영사학회, p.3~5

[2] Philip Kotler, John A. Caslione, Chaotics; 김명철, 박영호, 카오틱스, 비즈니스맵, 2009년, p. 30~31

[3] Todd G. Buchholz,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이승환,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김영사, 1994년, p.7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