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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영화 <심야의 FM>과 라디오 <정은임의 FM영화음악>



 영화, 영화음악 그리고 DJ        ★★★☆

영화 <심야의 FM>을 보았습니다. 개봉 전 기사를 보고, 기대를 하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재밌게 잘 보고 왔습니다. <부당거래>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네이버 평점(10.11.02 현재 8.15) 그대로 믿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관람 평을 보면, '유지태 열연이 좋았다'. '수애의 모성애가 빛났다' 등의 의견이 많습니다. 

[영화 줄거리 및 소개]

제한된 2시간, 놈과의 사투가 생중계 된다! | 지금부터 시키는 대로 방송하는 거야!

5년 동안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한 심야의 영화음악실 DJ 선영(수애).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악화된 딸의 건강 때문에 마이크를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노래부터 멘트 하나까지 세심하게 방송을 준비하는 그녀… 하지만 마지막이어서인지 무엇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유지태)로부터 시작되는 협박!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미션을 처리하지 않으면 가족들은 죽는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그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채 가족을 구하기 위해 홀로 범인과 싸워야 하는 선영! 그렇게… 아름답게 끝날 줄만 알았던 그녀의 마지막 2시간 방송이 악몽처럼 변해 그녀를 조여 오기 시작하고,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선영과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의 피 말리는 사투가 시작된다.    (네이버 영화 중)


새벽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분들이라면, 잠시나마 추억에 잠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벽에 듣는 라디오는 언제나 설레임을 주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특히, 차분한 중저음의 수애 목소리는 새벽 프로그램 DJ와 정말 꼭 맞아 떨어집니다. 여린 몸매지만, 강인한 이미지도 어울리고요. 캐스팅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이 떠올라서 그 사람을 계속 그리면서 영화의 호흡을 따라갔습니다. 극중 DJ 선영처럼 수많은 팬을 보유했고, '막방'을 눈물로 함께 아쉬워했던,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의 故정은임 씨입니다.


 진심으로 소통했던 '영화인' 정은임


생년월일
  1968년 10월 13일
출신학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 석사 라디오.텔레비전.필름
  석사논문명: 한국의 영화 마니아
입사년도
  1992년 8월
약력
  1992년11월 ~ 1995년 4월 'FM 영화음악'
  1993년 '비디오 산책'
  1994년 ~ 1995년 '샘이 기픈물'
  1998년 ~ 2000년 결혼, 유학
  2001년 11월 ~ 2003년 4월 '행복한 책읽기'
  2003년 10월 ~ 2004년 4월 '우리말 나늘이'
  2003년 10월 ~ 2004년 4월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2004년 8월 4일 영면

"저,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1992년 11월~1995년 4월,
채 3년도 되지 않는 시기에 그녀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 당시, 영화에 대한 깊은 이야기와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기존 영화음악 위주의 프로그램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화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며, PC 통신을 통해 청취자들의 의견을 담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리버 피닉스의 열혈한 팬이었던 그녀는 그의 요절소식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은 좌파 영화라 불리우는 영화를 소개하기도, 노동가의 대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등을 방송하기도 했지요. 
특히, 방송 복귀 후 한진중공업 노동자 故 김주익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오프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매니아 층의 열렬한 지지와 DJ 교체 반대 서명운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95년 봄 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유학 후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녀는 2003년 10월, 8년 6개월 만에 다시 영화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보다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욱 길었었지만, 팬들에겐 정말 꿈만 같은 소식이었지요.

스물 다섯의 나이에, 대한민국 영화팬들의 '잔다르크'가 된(영화 심야의 FM에서의 잔다르크와는 어감이 다릅니다.) 그녀는 현실세계에서도 순수함과 치열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입사시절 노조탈퇴서 작성에 유일하게 반대하며, 노조활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던 그녀는 결국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복귀 방송을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하차해야 했습니다. 이후 이렇다할 방송을 맡고 있지 않던 그녀는 비가 내리던 2004년 7월 22일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 해 8월 4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고 맙니다.


 아직도 들려오는 <FM 영화음악> 

영화 속 세상으로 떠나 '리버 피닉스'와 조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 정은임
그녀를 정든님으로 기억하는 팬들은 아직도 기일에 모여 바자회를 개최하며, <그녀>와 <그녀의 FM영화음악>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전 방송은 아직도 MP3나 웹을 통해서 들려지고 있으며, 얼마 전 6주기는 트위터를 통해 추모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팬들이 기억하는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는 영화 <심야의 FM>의 한동수나 손덕태와 함께 '영화퀴즈'를 할 수 있는 광적인 팬들도 있었을테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듣던 수험생도, 밤을 가르는 'Taxi Driver'도, 잠 못 이루는 청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두가 새벽시간을 기다리며, 정은임과 함께 호흡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정은임' 보다는 '배유정' 세대에 더 가깝고, KBS 라디오의 <전영혁의 음악세계> 애청자였지만, 94년도에 지독한 라디오키즈 였던 터라 간간히 듣던 정은임 아나운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것만 같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방송 오프닝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 입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Lenny Kravitz의 <It Ain't Over 'Til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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